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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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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우연(melancoly haphazardness)
예로부터 삶은 그 자체가 우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세상에 머문다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요, 그래서 이 생에서는 얻을 것이 별로 없고, 내세에 가서야 진정한 그 무엇을 얻는 것으로 여겨졋던 것이다.
이 생에서의 삶은 필연적인 것,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우연적이고, 불확실하며, 순간적인 것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죽음을 예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제자와 친구들과 함께 나눈 대화록, 즉 ‘파이돈’이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는 신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신체와 욕망의 제약을 받으며, 그로 인해 순수한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죽어서 이데아의 세계에 이르러서야 순수 인식을 얻을 수 있으므로, 철학자라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몸소 실천하였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죽음을 순수인식을 얻으러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현세에 대한 평가절하는 기독교 사상이나 불교의 사상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내세를 기약하며, 내세에 가서야 인간이 영생하며,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죽은 자의 색깔을 입어라...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전해내려온 문구이다.
이처럼 현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생긴 이유는 모두 이 현상의 삶이 그 속성상 우연성과 자발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불안을 느끼며,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러 기제를 발명해 내게 된 것이다. 현상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우발적이며, 필연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즉 현세에서는 아무 것도 보장받을 수 없고,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말하자면, 삶은 우연이며, 우연은 우울한 것이다. 즉 삶은 우울한 우연(melancoly haphazardness)이다.
그러나 우연이란 것이 과연 나쁜 것일까! 인생살이를 해 나가는데 필연적으로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인간은 살아갈 맛이 안 날 것이다. 우리가 아직 가지 못한 저 너머에 는 무엇이 있을까...이런 설레임과 호기심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모든 것은 운명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으니 그것을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요, 그 결정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이 생을 떠나든지 그냥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필연성의 섬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자유를 상실한 사람이다.
우연은 자유로울 수 밖 없는 인간에게 부여된 그 무엇이다. 우연이 있는 한 인간은 자발적인 존재이며, 자유로운 존재이다. 자유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무엇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A와 B가 있을 때 나는 A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B를 선택하거나, 혹은 반대로 B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A를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는 우연에 내재된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다면, 그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자유로운 인간의 징표는 불안이다. 그리고 삶은 불확실성의 세계이지 확실성의 세계가 아니다. 인생은 그 불확실한 대양속에서 확실성의 섬을 세우는 과정이다. 인간이 만든문화들, 그리고 제도들, 사상들, 그러한 모든 것들은 불안한 인간이 확실성의 섬을 구축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불확실성속에서 표류하는 자유로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삶은 우연으로 이루어지지만 사실은 우울한 것이 아니다. 우연이 가진 힘, 자유를 잉태한 우연, 자유의 실현으로서 인간의 위대한 행적들과 성취물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우연이 아름답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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